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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kie.rebel
눈보라가 맹렬하게 얼굴을 할퀴는 와중에도, 마차가 성채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고요도, 단념도 아닌, 마치 작고 축축한 방울처럼 얼어붙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마부가 던져주는 거친 명령에 겨우 몸을 세웠고, 두터운 겨울 외투 아래에서 오래 눌린 꿈처럼 굳은 근육이 바스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치에 내려앉은 눈이 꾹꾹 밟혀 주름지고, 그 위로 내 족쇄에서 벗어난 발목의 상처가 도드라지는 듯했다.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철제의 경첩 소리가 징그럽게 울려 대리석 바닥까지 진동을 줬다. 성 안으로 들어갈 때, 내 옷자락과 머리칼에 박힌 얼음 조각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익숙한 듯 낯선 냄새—기름진 향신료, 달콤한 와인, 사슴가죽 같은 냄새가 뒤섞여, 숨 쉴 때마다 목을 찔렀다.
나는 근위병 두 명의 틈바구니에서 마치 위태로운 유리컵처럼 이끌리며 대연회장 쪽 복도를 걸었다. 벽에 걸린 촛대들은 은빛으로 빛났고, 벽지 곳곳엔 실비에르 가문의 오래된 문양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따스함이 배어 있진 않았다. 동행하던 하녀 하나와 눈이 짧게 마주쳤다. 그녀는 잠시 나를 훑듯 바라보더니 곧 눈을 떨궜다—호기심도, 동정도, 두려움도 아닌, 그저 계산된 반사신경.
연회장 문이 활짝 열렸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부인들과 북방 귀족 남성들이 빛나는 잔을 들고 속닥이며, 머릿결와 옷자락이 이따금 촛불을 스치면서 섬광같은 잔상이 오갔다. 방 안은 어딘가 어수선할 만큼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소음 이면에는 예리하게 감춰진 침묵의 톱날이, 기묘한 긴장감으로 둥글게 감돌고 있었다.
"노예 에일린, 실비에르 공작께 인사드리라." 근위병 한 명이 단정한 목소리로 내게 방향을 틀었다.
나는 발등을 단단히 눌러 섰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하찮은 신분에 걸맞은 절도를 취했다. 장식용 은잔이 부딪히는 소리, 벽난로에 타는 낙엽 냄새, 무심한 시선과 음흉한 쪽눈질이 여러 방향에서 쏟아졌다. 누군가는 내 옷깃에서 성의 먼지를 털듯, 무심한 듯 시선을 피했고, 또 누구는 입꼬리를 살짝 한 쪽만 올려 노골적인 조롱을 감추더니, 금새 다른 대화를 시작했다.
"영광이로다. 한때 황녀였던 이가, 우리 가문을 위해 다시 돌아왔으니." 공작의 목소리는 마치 칼날에 올려 놓은 실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표면적으로는 환대, 속내로는 의심. 나는 방 안에 번지는 느릿한 박수를 들었고, 외견상 진심을 가장한 웃음들이 연이어 연회장의 공기를 눌렀다.
"낯익은 얼굴도 있겠지만, 이 자는 이제부터 실비에르 성의 질서에 복종할 것이다. 충성을 다하도록." 공작의 마지막 어구가 짧게, 그러나 무겁게 내려앉았다.
귀부인 하나가 부피감 있는 드레스를 흔들며 내 귀 옆을 스쳐갔다. 속삭임, 숨죽인 헛기침, 누군가는 하찮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예절을 지키는 척하는 그들의 손짓과 눈짓 속에 깔려 있는 것은, 동병상련이 아닌 놀잇감에 대한 은밀한 기대, 혹은 긴장된 조심성이었다.
내 시야 끝에서 얇은 글래스잔을 들고 서 있던 젊은 귀족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는 걸 보았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내가 숨어 있는 곳을 들키지 않으려 할 때 손끝을 잡는 습관과 닮아 있었다. 나는 순간 혀끝으로 입술을 눌렀다. 감정이 표정에 비치지 않게, 한 번 더 숨을 눌렀다.
이름 모를 하인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손짓했다. 노예의 거처로 이동하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연회장을 한 번 쓸며 본다. 눈부신 샹들리에, 그 아래로 길게 흐르는 검은 카펫, 열려 있던 창문 틈 사이로 몰래 스며드는 바람의 냉기까지. 모두가 환영이라 말했고, 모두가 나를 쓸모없는 소모품처럼 삼켰다.
알겠다. 이곳이 나를 시험할 무대라면, 나는 그 시험에 끝까지 응답할 것이다. 스스로 속삭이며, 연회장 너머 어둑한 계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족쇄 자국이 쿡쿡 쑤시는 느낌.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수십 개의 이질적인 시선을, 서늘하게 등딱지를 두른 짐승처럼, 또렷이 기억해 두었다.
문득 익숙한 오르골 선율이 담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누군가 일부러 흘린 듯한, 잊혀진 멜로디. 나는 짧게 멈칫했지만, 하인의 닦달에 이끌려 다시 어둠 속으로—노예들의 숨죽인 공간, 그 모서리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노예들의 구역은 연회장의 황금빛과는 전혀 다른 공기로 가득했다. 석벽이 내뿜는 싸늘함과 천장 높이 드리운 거미줄, 오래된 곡물자루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하인은 더 말없이 내게 허름한 짚자리가 겨우 놓인 공간을 가리켰다. 구획마다 칸막이 한 장으로 조악하게 갈라져 있었고, 안쪽에선 은밀한 속삭임과 누군가 눌러 삼키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치 차디찬 감옥이 덧씌워진 듯한 고요가 깃들었다. 나는 손끝으로 낡은 담요의 가장자리를 집어 들었다. 오래 세탁하지 않은 누런 천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북방의 풍설보다 깊은 피로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내 귀에 어스름하게 남은 오르골 음율이 다시 한 번 맴돌았다. 명백히 누군가의 신호였다. 아니면 실비에르 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만 살을 섞고 강퍅하게 살아가는 자들만이 알아들을 법한 암호.
나는 조심스레 담요 아래, 혹시라도 숨을 곳이 있나 매만졌다. 손바닥 안에 얇은 나무조각 하나가 만져졌다. 구석에 숨겨 놓은 예전의 책갈피, 이미 색이 바래 버린 실타래 조각. 나는 그것이 내 손에 굳이 남아 있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습관처럼 친숙한 모양을 곱씹었다.
머리맡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 저음의 경계가 스며 있었다.
“황녀 폐하께서는, 노예의 방이 너무 협소하진 않으신지요?” 위협적인 조소였다. 어둠 속에서 눈만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찔러오는 촛불보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내가 이전의 신분 따윈 남김없이 잘라내고, 이 공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
상대는 잠시 내 대답을 기다리듯 기척만 남기다,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뒤로 희미하게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벽 너머에서 눌러 삼키는 호흡과 긴장된 차가움을 더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숨결을 고르며, 나는 담요 한 귀퉁이에 메마른 손톱으로 문양 하나를 긁었다. 무늬는 흐트러지고 치졸했지만, 오롯이 내 몫의 장소로 이 타락한 성벽을 다시금 새기려는 의지의 흔적이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기회를 기다리며, 나는 곧 다가올 기이한 변화를 직감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이 차가운 공간에도 또 한 번… 누군가의 운명적 발걸음이 들려오리라는 것을. 그런데 지금 이 짧은 정적 속에서, 섬뜩하게 또렷한 기척이 문틈 너머에서 멈춰 섰다. 희미한 기름등 불빛 아래, 거칠게 들이마시는 숨소리와 낮은 속삭임이 엉켜 있다. 나는 무릎을 살짝 세운 채 쇄골을 가릴 만큼 담요를 끌어올리고, 손안의 책갈피 조각을 본능적으로 움켜쥐었다.
문이 바스라질 듯 천천히 밀려 열렸다. 그 안으로 무언가 길게 비치는 그림자 한 줄이 안으로 스며든다. 한때 귀족이었을 노파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봉긋한 관자놀이와 깊게 패인 뺨, 눈초리가 흉터처럼 짙었다. 노파는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옷자락에서 바삭한 곡물 냄새와 먼지, 어쩌면 피의 뒷내가 묻어났다.
“여기가, 네 자리다.” 노파가 짧고 날카롭게 속삭였다. “하지만 네가 네 이름을 여기에 남기고 싶다면, 새겨야 한다. 기억해라. 실비에르 성에서는 아무도 스스로의 이름을 공짜로 갖지 못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안쪽 허벅지 살에 조용히 꽉 힘을 줬다. 긴장이 피부 아래서 꿈틀거렸다.
노파는 잠시 나를 내려다보고 뇌까렸다. “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봐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 고개를 숙여야 할 것과 숙이지 말아야 할 걸 구분해야 한다. 북방의 냉기는…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모두 잡아먹으니까.”
그 말끝에 쓸쓸한 쉼표가 걸렸다. 노파가 내 팔뚝 위에 거친 손을 올렸다가 감은 자국을 보고, 의미를 담은 듯 눈을 한번 좁혔다.
“어린 년… 혹시 있지, 네가 살고 싶다면 모서리 위쪽 벽돌을 잘 살펴둬. 무엇이든, 숨길 구멍이 거기 남아있을 거다.” 속삭이고는, 노파는 다시 한 번 들어올 때보다 더 조용히, 허리를 구부린 채 그림자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문득 내 옆칸에서, 누군가 담배 잎을 씹는 소리, 낮은 기침, 끼익 하는 침상 마찰음이 스며들었다. 나는 담요를 당겨 현실에 나를 깊게 묶었다. 가슴께에 숨기듯 꺼내 든 낡은 나이프의 금속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차가웁게 식었다.
바깥에서 다시 발소리가, 이전과는 또 다르게, 천천히 복도를 따라 다가왔다. 호기심인지, 의도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낯선 그림자가 문앞에 멈춰선 채, 문고리를 두어 번 가볍게 굴렸다.
짧은 시간, 모든 숨결이 얼어 붙는다.들릴 듯 말 듯 또각이는 구두소리가 석벽 복도에 실려왔다. 칸막이 너머에선 순간 감도는 침묵, 잠자코 숨을 멈춘 기척들이 내 내면의 심장박동과 한 덩어리로 겹쳐졌다.
문고리 위로 얇은 손이 드리워졌다. 빛에 드러난 손끝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움직였다. 나는 담요를 더 끌어올리며, 손안의 책갈피 조각을 무의식중에 매만졌다—이름을 새겨넣지 못한, 그러나 쉽게 버릴 수 없는 나의 작은 언어.
문이 덜컥 열린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내 방을 가른다. 이번엔 어린 하녀였다. 물을 담은 낡은 대야를 조심스럽게 들고 섰다. 얼굴을 완전히 숨길 만큼 내린 두건 아래, 두 눈동자만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실눈을 하고 주변을 살핀 뒤 천천히 나에게 다가섰다.
“...이거, 드세요.” 목소리는 거의 으스러질 만큼 작았지만, 끝맺는 어투엔 망설임과 모진 결의가 엉켜 있었다. 하녀는 조심스럽게 대야와 조그만 빵 조각, 그리고 손바닥에 꼭 쥔 쪽지를 내 앞으로 밀어두었다. 손끝이 내 담요에 흘러내릴 정도로 가까웠으나, 나는 그 손길을 일부러 벗어나듯 늦게 받았다.
쪽지에는, 희미한 먹물로 단 한 문장만이 남겨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말 것. 벽 뒤에는 항상 눈이 있다.
나는 그 짧은 경고에 담긴 진의를 곱씹었다. 하녀는 잠깐 내 눈을 바라보더니 곧 허리를 깊이 숙였다. 모를 일이다—이것이 동정인지, 누군가의 명령에 따른 시늉인지, 아니면 여기 성 안의 비밀스런 균열의 조각인지를. 그녀의 뒤로, 바싹 고조된 긴장감이 칸막이 너머로 번졌다.
하녀가 천천히 방을 빠져나가고, 등 뒤로 커다란 장식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물 표면에 희미하게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쪽지를 접어 손바닥에 쥐었다. 여전히 어둠은 내게 말이 없고, 성의 숨결은 벽을 넘어 내 귀를 적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시하고 있는 누군가—혹은 복도의 반대편, 혹은 천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들. 단순한 협박이든 실제 위험이든, 나는 이 경고를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담요 아래 숨죽여 앉은 채, 나는 진짜 시험이 잠시 후 찾아올 것임을 짐작했다.
그 순간, 아주 낮은 목소리가 벽 너머로 쇠창살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번졌다. “잊지 마라.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네가 먼저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어둠과 침묵만이 느릿하게 방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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