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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kie.rebel
거실의 조명은 이미 반쯤 낮아져 있었다. 테이블 위 보르도 빈 와인잔 하나, 나는 살짝 입술만 다시 적시며 비앙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 맞은편 소파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있었다. 이제 막 비옷을 벗어놓았음에도 그녀에게선 여전히 잘 정제된 샤넬 향이 은근하게 스며든다.
“이 밤에 무슨 바람이 불었지?” 나는 최대한 일상적인 톤을 유지했다. 비앙카의 두 눈동자에는 늘 뭔가를 감추는 그림자가 스며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붉다. 피곤해서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래된 와인 냄새가 너 보고 싶게 하더라고. 서유진, 넌 이런 밤이 잘 어울리지.” 비앙카는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내 표정을 훑었다. “그리고,” 그녀는 잔을 돌렸다, “도시가 오늘은 좀 불안해 보여.”
창밖 아래로 불빛과 어둠이 일렁였다. 나는 그녀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부러 몰랐다는 듯 덤덤하게 턱을 괴었다. “도시가 언제 안 그랬나. 니가 말하는 건 기상 예보야, 아니면 뭔가 흘린 정보?”
비앙카가 웃었다. 그 웃음은 눈가를 살짝 주름지게 만들었다. “네가 항상 그리 익숙할 정도로, 신뢰를 쉽게 주는 사람은 아니었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누군가한테 배운 거지.” 나는 짧게 내뱉었다. “신뢰가 무너졌을 때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어릴 때 똑똑히 봤거든.”
비앙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 와인잔을 들이켰다. 그 움찔하는 손끝의 긴장—그녀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신뢰는 부서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겨나기도 하지.” 낮은 목소리였다.
나는 미소를 숨기려다, 끝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갑자기 여기까지, 내 집에 찾아올 만큼 믿음이 생겼다?”
“아니.” 그녀가 바로 잘랐다. “그냥... 궁금해서. 요즘 너, 이상하게 조용하더라고.”
순간 거실 공기가 가라앉는다. 나는 등받이에 더 깊이 몸을 묻었다. “조용하면 뭐라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진, 네가 조용할 때마다 반드시 사이렌이 울렸거든. 조직 전체가 네 숨소리 하나에 긴장하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니지?”
작은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관찰한 사람들만의 방식으로, 짧은 눈짓과 숨결 하나까지 살폈다.
“조직 얘기 나와서 말인데,” 나는 손끝으로 빈 잔을 굴렸다, “최근 시스템 쪽 감사해봤냐? 알렉스가 어제 밤 새벽 두 시에 서버실 들어가는 걸 누가 봤다고 하더라.”
비앙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알렉스... 그 새끼, 돈 냄새 맡으면 뭐든 건드리는 습관 버리질 못하네.”
“알렉스가 무슨 짓을 했든, 이상 신호가 감지된 뒤에야 움직이면 늦어. 네 쪽에서도 뭔가 들어온 거 없나?” 나는 그녀가 이번에도 정보를 감췄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비앙카는 잠시 정면을 응시하다, 한쪽 다리를 끌면서 내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였다. 마치 침실로 가자는 사인이 아닌, 더 가까운 대화의 경계 선상에서 머무는 느낌. 조명이 점점 더 어둡게 침잠한다.
“소문은 들었어. 데이터가 외부에서 손 탄 흔적. 루시앵이 자꾸 내 사무실을 맴돌던데, 너랑 내 사이에 썩 달가운 모종의 기류라고 의심하는 것 같아.”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루시앵의 집착, 그 눈빛은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루시앵은 원래 자기 돈 움직임만 믿지, 사람은 안 믿잖아. 네가 그런 남자랑 비밀을 나눌 거라고 아직도 생각할까?”
“그리고 넌?” 그녀가 가볍게, 그러나 날카롭게 던졌다. “누구도 믿지 않는 건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역할에 충실한 건지 궁금하네.”
비앙카의 말끝이 닿자, 내 심장이 이상하게 두 번 정도 더 뛰었다. 나는 잠시 시선을 피한 척 창밖 도시를 내려다봤지만, 곧 눈길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와 나 사이에, 아찔하게 미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무심한 척 다시 섰지만, 이미 한 걸음 침실 쪽으로 발을 옮긴 건 나였다.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여기서 대화가 끝나겠지. 하지만 예상대로, 비앙카는 망설임 없이 내 옆을 스쳤다.
거실과 침실 사이, 짧은 복도.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잠깐 마주 섰다. 불빛이 더 침침해지면서, 서로의 그림자만이 벽을 따라 얽혀든다. 나는 문득, 말보다 숨소리가 더 많은 것들을 전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비앙카의 손끝이 내 팔 위를 스치며 슬쩍 내려갔다. 나는 짧은 전율에 숨을 삼키고, 한 발짝 더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 작은 간극에, 이 밤의 위태로운 온기와 각자의 비밀이 서성인다.
“아까 했던 얘기, 계속하고 싶으면 여기서 그만두든가, 아니면...” 내가 낮게 속삭이자 비앙카가 입꼬리를 얕게 올렸다.
“유진, 넌 참 어떤 의미로 잔인해.”
조명이 완전히 어둑해지는 사이, 우리는 말 대신 호흡과 몸짓으로 서로를 떠보고 있었다. 낮아진 조명 아래, 물리적 거리처럼 심리적 거리도 이미 거의 닿을 듯 좁혀져 있었다. 비앙카는 내 손목 위에 남은 작은 흉터 자락을 가만히 엄지로 쓸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에서 와인과 서늘한 샤넬,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긴장감이 얽혀 나선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손끝만 닿았을 뿐인데, 과거의 서늘한 밤들과 지금 이 밤이 한데 스쳐 흐르는 듯했다.
“잔인한 건—네 약점을 들춰보는 쪽이겠지.” 내 목소리는 속삭임만큼 낮았다.
비앙카는 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 견고한 시선 속에서, 나 또한 내 마음 어딘가가 뒤틀리는 걸 느꼈다.
“서로 약점 없는 척하면서 이렇게 가까이 올 수 있을까 싶었거든.” 그녀의 웃음은 조용했고, 말끝마다 독이 섞인 듯 무게가 있었다. “내가 네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해?”
나는 비앙카를 천천히 끌어당겨, 불빛 그림자가 엉키는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대게 했다. 몸 하나 겨우 스칠 만큼 좁은 틈, 귓가 가까이 바람 소리처럼 속삭였다.
“아니. 근데 넌 늘, 손바닥 밖을 원하지.” 균형을 잃을 듯, 우리는 서로를 탐색했다. 손끝에서부터 두근거림이 올라오면서도, 두 눈에서는 아직까지도 계산과 망설임이 흐르고 있었다.
비앙카가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반쯤 감긴 눈으로 내 입술을 한 번 스쳤다. 이 작은 접촉은, 서로의 본심을 숨긴 채 잠시 정전된 듯한 침묵을 만들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그녀와 숨결을 공유했다. “이 밤이 끝나기 전에,” 나는 속삭였다, “네 속을 한 겹이라도 벗길 수 있을까?”
비앙카는 소리 없는 미소를 흘렸다. 그 미소에는 두려움, 욕망, 경계와 체념, 모든 것이 눅눅하게 감돌았다.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거리. 우리를 감싼 어둠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조금 뒤, 멀리서 핸드폰의 미세한 진동 소리가 울렸다. 아주 짧게, 실금처럼 파고들면서 방 안의 공기를 깨운다.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리지만, 누구도 먼저 몸을 떼지 않는다.
그 순간, 우리의 그림자 위로 어둠이 다시 한 겹 내려앉았다. 이번엔, 서로의 시선 안에서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결심이 살짝 흔들렸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이 미끄러지는 침묵 한가운데에서.
나는 비앙카의 손목에 닿았던 내 손끝을 천천히 떼지 않은 채, 시선을 핸드폰 쪽으로 옮겼다. 침묵은 더욱 팽팽해졌고, 그녀의 숨결이 내 턱선에 희미하게 닿았다가 사라졌다.
전화는 울림을 멈췄지만, 우리는 그 여운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네온사인의 불이 잠깐 떨려온다. 거실 한구석에서 은은하게 번지던 클래식 선율마저도, 마치 우리 사이의 정적을 지켜주려는 듯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앙카의 호흡이 조금 빨라진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동요조차, 그녀가 얼마나 날 경계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받지 않을 거야?” 내 목소리는 유난히 낮고 부드럽다. 꼭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처럼, 외부로부터 단절된 이 밤의 밀실에서.
비앙카는 손목을 한 번 더 내 손바닥에 의지했다가, 매끄럽게 벗어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 밤엔...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눈동자에 짧은 불안이 스치지만, 곧 다시 단단히 닫힌다.
나는 작게 웃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솔직해졌지?”
“가끔은... 완벽한 가면보다, 약간 틈이 있는 게 덜 위험할 때도 있어.”
그녀의 말은 숨겨둔 칼날 같았다—솔직함을 무기로 쓰는, 혹은 역으로 방어하려는.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짚어내지 않는다. 대신 거칠어진 심장의 고동을 조금만 더 숨긴다.
어둠 속에서, 비앙카가 손끝으로 내 셔츠 소매를 살짝 만졌다. “네가 정말 원하는 대답은, 이 방에서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한 순간 그녀를 꼭 껴안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지만, 경계를 허물지 않은 채, 이 밤의 밀도를 즐겼다. 손끝이, 목덜미가, 아직은 겨우 감춰져 있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 그럼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내 목소리가 침착하게 떨렸다. “대신—오늘밤은 어느 쪽이든 안심할 수 없다는 거, 잊지 마.”
비앙카는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오래된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느껴진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진 채, 복도의 어둠은 한껏 짙어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거실 쪽에서 바람에 창문살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불안이 거세진 듯,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간다.
비앙카는 여전히 내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녀의 눈매에는 질문과 의심, 그리고 무언가 결심하지 못한 채 고여있는 열망이 번진다.
“조금만 더, 여기 있어도 돼?” 비앙카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진지했다.
나는 대답 대신 손끝을 한 번 더 그녀의 손에 얹었다. 말보다 오래, 더 뜨겁게.
이 순간, 누군가가 다시 전화를 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방 한가운데 스며든다. 침묵과 어둠, 그리고 감춰진 진실의 기류 속에서 우리는 잠시 한 호흡 멈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창밖의 불빛 아래, 다음 움직임을 고르고 있는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뿐이었다.비앙카의 손이 내 손등 위에서 가볍게 미끄러졌다. 일렁이는 조명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복도 바닥에 겹쳐진 채로 호흡을 나눈다.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마음은 더 들키기 쉬워진다. 나는 짧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잠시, 이 장소가 누구의 영토인지조차 무의미해졌다.
“이 공간, 참 묘하지.” 비앙카가 낮게 중얼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진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벽도, 네 옆에 서 있으면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아.”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이 방, 이 거리, 우리의 틈—모두가 의심과 유혹, 경계와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조금 더 몸을 기울여 비앙카의 어깨에 부드럽게 이마를 댔다. 가만히 귀에 속삭인다. “사람은, 위험할 때 본능적으로 가까워지는 거니까.”
비앙카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체온이 살짝 치솟고, 그 미세한 떨림이 내 턱 끝을 훑는다. 나는 그 떨림을 알아차리지만,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다. 말보다 더 깊은 것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곁에 기대는 비앙카의 손길이 이번엔 내 허리께를 스치며 내려간다. 잠깐, 생각과 계산을 잊고, 피부 아래에서 움직이는 심장의 박동만이 강하게 울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밖에서는 또 다른 차량 불빛이 지나가며 유리창 위로 일렁이는 환영만 남긴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숨결이 마주친 사이로 짧은 속삭임이 흘러나온다.
“유진, 혹시 네가 떠올린 미래엔… 날 위한 자리가 있을까?”
나는 대답을 멈춘다. 침묵이 길어지다, 내 손이 그녀의 뺨에 조용히 머문다. 수없이 고백하지 못한 말과, 어떤 진실도 꺼내지 못한 경계가 아직 여기에 있다.
비앙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다. 어둠에 덮인 복도, 미묘하게 떨리는 호흡, 몇 밀리의 거리.
이 밤이 어디서 끝날지, 아직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채, 서로를 덮은 불안과 기대, 그리고 달콤하게 아린 한순간만이, 방 안을 붙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주 멀리 쇼팽 선율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복도 끝 테이블 위의 스마트폰 화면이 짧은 불빛을 내며 켜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긴장과 유혹이 한데 엉킨 채, 우리는 이 밤과 또 다른 침묵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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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계약 연애
금단의 계약 연애のストーリーチャッ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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