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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ピソード2

낯선 고려, 이방인의 첫 숨결

Hoyayayaya

물레방아에서 물이 요란하게 흐르는 소리에 잠시 들렸다. 살짝 축축한 풀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는 주위를 훑으며 한참 모래길 위를 걷고 있었다. 물레방아 근처의 흙길엔 어른들은 짚신을, 아이들은 맨발을 내딛으며 바쁘게 오갔고, 저쪽 그늘엔 두런두런 모여 앉은 노인들이 있다. 노인들 셋—빼빼 마른 회색 머리에, 어딘가 굽은 등, 손끝엔 갈라진 굳은살—조용히 담뱃대를 돌리다가, 내가 다가서는 걸 보고 눈길만 한번 휙 준다.

내 손엔 스마트폰이 숨겨져 있다. 옷자락 속에 꼭 쥐었지만, 땀이 차서 손바닥이 미끈했다. 한 번 더 주위에 시선이 없는 걸 확인하고, 슬쩍 바지 안쪽으로 기기 화면을 켰다. 메모장을 열었다. 광에서 얻은 하얀 식염, 나뭇잎, 끓인 물—감기 예방, 소독법, 약초들의 효과를 짧게 기록한다. 자칫 누가 옆에서 보면 바로 ‘귀신 들린 놈’ 소리 나올 게 뻔했다. 잠깐씩만, 아주 조심스럽게.

바로 옆, 미닫이 돌담 너머에서 소녀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거기서 뭐하세요?”

작은 아이—열 살쯤 되어 보이는—갈색 땋은 머리, 천조각을 꿰맨 누런 저고리, 손엔 풀잎 바구니.

내가 얼떨결에 손을 저고리 안에 집어넣은 채 들킨 듯 멈춰 섰다.

“그냥, 물레방아가 잘 돌아가나 보고 있었어.”

흠칫했는지, 소녀는 그 낡은 바구니를 데구루루 굴렸다. 또다시 노인들의 낮은 음성이 섞여 들어온다.

“…이번 역병, 저기 시내 넘어까지 번졌다더라지.”

“지난달에만 벌써 어린 것 셋 죽었지.”

“우린 뭐 가진 게 없으니, 약초나 끓는 물에라도 의지해야지…”

그 말이 내 귀에 아프게 박힌다. 나는 본능적으로 저 스마트폰을 꺼내, 세균과 오염, 물 끓이는 시간, 식염 농도범위를 더 적는다. 손가락이 자꾸 덜덜 떨리니, 화면이 번들거려서 읽기 힘들다.

소녀가 한 걸음 더 다가온다. “아저씨, 그거 뭐예요? 이름 내놔야 오는 건데.”

순간 심장이 울컥 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옷자락을 더 꼭 쥐며 어색하게 웃었다.

“응, 그냥… 옛날에 쓰던 도구라서. 신경 쓰지 말고.”

불신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길이, 애초에 서울에 있던 내 모습과 너무 달라서 순간적으로 짜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아이의 바구니를 가리켜 물었다.

“풀잎은 어디에 쓰려고?”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바구니 안에 뭉친 풀잎과 굴 껍데기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약 만들라고요. 감기 걸리면 저거 삶아 먹으래요. 근데 소용 없는 것 같아요, 동네 아저씨들은 계속 아프고…”

노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날카롭게 쏠린다. 내가 뭔가 말을 보태자니, 다들 숨 죽이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느낌. 작은 실수 하나가 금방 소문이 될 게 너무나 확실하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목이 살짝 잠긴 채 말했다.

“계속 아프면, 물을 꼭 끓여 먹어보라고 해. 다른 데서 누가 더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삶아먹으면 덜 위험하니까.”

노인 중 한 명이 나를 흘끗 보더니, 담뱃대를 떨면서 중얼거렸다.

“…저 총각이 요즘 좀 이상하다 하지 않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풀밭 너머 소녀에게 손짓을 한다. 뒷걸음질 친 아이가 잠깐 머뭇대다가 풋내 나는 바구니를 품에 안고 뛴다.

흙길 맞은편,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잠깐 이쪽을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타난 사내는 평범한 농부 차림이지만, 걷는 동작이 지나치게 조용하고 민첩했다.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다. 그저 물레방아 너머 언저리를 돌고, 안쪽을 관찰만 한다.

나는 한 번 더 주위를 살핀다. 정보가 흘러들지 않는 곳, 그러나 단번에 퍼지는 소문과 신분 차별. 역병, 직업, 신분, 모든 게 어색하게 덮여 있다. 속을 꾹 참으면서 들어오는 불안—여기선 작은 실수 하나가 곧 내 정체의 위기로 연결된다.

마침 지나가던 아낙네가, 내 옷깃에 흙먼지를 톡, 털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요즘 도씨네에 이상한 사람이 드나든다 들었지. 조심하세요, 여기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은 곧 바보나 외지인이라 하니까.”

나는 하품을 흉내내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내 안쪽에서 점점 더 절박해지는 경계심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물레방아 수로에서 흙탕물이 튄다. 곁에 있던 아이 하나가 삐죽 나온 대나무를 툭툭 치다, 내 주머니 쪽을 의미심장하게 훑어봤다. 이 여기는, 작은 움직임조차 오래 남는다. 나는 다시 한번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닫으며, 물레방아 바퀴의 느린 회전과 민초들의 무거운 숨소리를 눈에 담았다.

누구도 내 정체를 놓치지 않지만, 누구라도 내 흔적을 따질 준비가 되어버린 곳.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레방아 곁을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걷는다. 내 마음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낯선 시선은 내 발끝을 따라붙는다.마을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조심히, 그러나 속으로 불안에 시달리는 채로 이어졌다. 흙길의 울퉁불퉁한 자국에 헛디딜 때마다 저 멀리서 백성들의 동그란 눈이라도 내 뒤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 저고리 안에 감춘 스마트폰은 손바닥에서 미묘하게 민감한 열을 낸다. 그 작은 불빛 하나가 이 세계와 내가 온 세계의 간극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 마음 한가운데에 무거운 긴장이 부풀었다.

골목 어귀엔 낡은 기왓장 사이로 연기가 얕게 올라오고, 초가 지붕 밑에서는 누런 옷깃을 털며 콧노래를 내뱉는 아낙들이 있다. 짚을 엮는 아이들, 흙을 이겨 벽을 때리는 장정들—각자의 일에 몰두한 것 같다가도, 이상하게 내 쪽을 한 번씩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나는 아무리 평범한 동작을 흉내 내도, 이 낯선 환경은 내 몸 구석구석을 타인의 시선으로 채우고 있었다.

풀냄새, 저녁 볕에 그을린 흙먼지, 물레방아의 규칙적 흔들림. 그 한복판에, 작은 그림자 하나가 스르르 다가왔다.

“잠깐, 총각.”

손끝에 마른 힘줄이 도드라진, 노인 중 한 명이 걷는 듯 다가섰다. 그의 손엔 쭈글쭈글한 담뱃대가, 입가엔 무심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갓 온 사람은 뭐든 눈에 띄기 마련이오. 내, 물레방아 밑 언저리에 어제 낯선 것이 떨어진 걸 본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긴장 속에 얼굴을 침착하게 고쳐쥐며, 구부정하게 몸을 낮춘다.

“낯선 것이라 하시는 건, 아마 바람에 날린 헝겊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노인은 잠시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마을 언저리 쪽을 한 번 더 눈길로 짚었다.

“흉년이 심해지면, 동네마다 수상한 이들이 기어 나오지. 무슨 일 있으면, 괜한 소문 돌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그 말끝을 따라, 저편에서 삐죽 나온 대나무 아래 또 한 명의 아낙이 짐을 옮기는 척하며 내쪽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사람마다 불안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이, 물레방아와 내가 지나온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머무르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숨을 고르고, 저고리 안의 스마트폰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마을의 작은 움직임마다 점점 긴장감이 더해진다.

그 순간, 저 멀리 골목 건너편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안쪽으로 더 조심스럽게 파고들수록, 어느새 또 새로운 그림자가 흙길 끝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이 한순간이 내 모든 경계의 시험대임을—나는 숨을 내쉬며 골목 깊은 어둠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또다시,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저 총각, 한마디만 물어보지.”

머리를 짧게 자른, 등 굽은 또 다른 노인이 어둠 저편에서 불쑥 걸어 나왔다. 낮은 기침소리가 공기 중에 걸쭉하게 맴돈다. 그는 일부러 마을 사람들이 모인 방향으로 등을 지며, 내 앞에 섰다. 나는 손가락을 다잡은 채 표정을 잔잔하게 유지한다.

“혹시… 네가 어젯밤에 개울가를 한 바퀴 돌았다지 않나?”

짧은 침묵이 흙길에 가라앉았다. 대답을 재촉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믿지도 못한 채 그의 시선이 내 눈동자를 더듬는다.

“그냥… 잠이 오질 않아서. 소란을 일으킨 건 아닙니다.”

내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은근한 단호함이 배어 든다. 굳은살 박인 노인의 얼굴에 일순 미묘한 움직임이 스친다. 그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슬며시 한 뭉치 풀잎을 손에서 손으로 굴렸다.

“그래. 낯선 이는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거라. 요즘 동네가 뒤숭숭해서, 돌아다니는 말이 많으니…”

주변의 시선은 점점 더 모아진다. 나는 저고리 안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꽉 쥔다.

멀리 쌍덩굴 담장 밑, 그 아이가 다시 불쑥 모습을 내민다. 바구니를 고쳐 잡으며 나를 힐끔거린다. 이 어린 눈빛조차 놓치면 안 되는 시점. 복잡하게 오가는 말과 시선, 깔린 불신의 기운.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당장 소문이 되고, 그 소문이 얼마든지 나를 삼킬 수 있다.

나는 한 번 더, 미소 비슷한 침묵을 얼굴에 얹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동시에 내 뺨을 타고 저녁 바람의 서늘한 기척이 스친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데, 골목 안쪽에서 불빛이 일렁이고 누군가가 조용히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 발자국 소리는 순간, 이질적으로 또렷하다.

누구인가—나는 등골로 흐르는 긴장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셋, 넷, 다섯 걸음. 길목 어귀, 미처 확인할 수 없는 그림자가 내 앞으로 서서히 드리워진다.

내 숨소리만이 좁은 골목에 닿는다. 저편의 불빛에 일렁이는 그 얼굴은, 아직 알아볼 수 없다.불빛이 흔들리며 그림자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난다. 나는 저고리 속에 스마트폰을 더 단단히 쥐고,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유지한다. 잠깐, 그 인영이 가만히 멈춰선다. 복식은 낡은 누런 도포에, 얼굴은 가져온 밤의 그림자에 반쯤 가려진다. 가까이서 풍기는 미묘한 흙내와 땀내, 이곳 사람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선 긴장감이 번진다.

그는 내 쪽을 바라보다,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마치 나만 듣기를 원하는 듯, 웅얼거리는 음성.

“총각, 잠시만.”

그 속삭임에 내 귀와 손끝이 본능처럼 반응한다. 나는 조심스레, 그러나 눈동자만은 상대를 예의주시하며 답한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손끝으로 도포자락을 건드리며, 한 번 둘러본다. 뒷쪽 마을 담장 너머에 사람들 몇이 흘끔거리고, 불안한 기색이 대기 속을 무겁게 누른다.

“요즘 이 근처서… 이상한 물건을 가진 자가 있다더만.”

침묵이 골목을 덮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바닥에 땀이 배어드는 것을 느낀다. 그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내 저고리 깊은 곳에 무심히 떨구었다.

“마을엔 낯선 게 오래 머물지 못하는 법이니, 너도 여기서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할 거요.”

그 한마디에, 등줄기를 타고 찬기가 내려온다.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너머 그의 얼굴을 챙겨본다. 사나이의 눈빛에는 단순한 경계심을 넘어, 뭔가 더 저변의 의혹과 호기심이 엿보였다.

그 순간, 뒷편에서 또다시 아이의 바구니에서 풀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저 멀리 담장 밑 노인들의 숨죽인 웅성거림이 짧게 스친다. 마을 전체가 나의 작은 움직임을 하나하나 새기는 듯했다.

나는 또 한 번 심호흡을 내쉬었다. 이 한낮의 경계와, 저마다의 감시가 쌓이는 한 순간—그 어둡고 서늘한 골목 끝에서, 불빛에 녹아든 또 다른 그림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발소리. 그리고, 멈칫하는 숨결.

마치 어떤 결정적인 질문이나 행동이, 곧 이 밤의 적막을 깨뜨릴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내 심장은 장단을 잃고 빠르게 두들겼고, 저고리 속의 스마트폰은 더욱 깊숙이 파묻혀 들끓는 듯 열기를 낸다.

저편에서, 누군가 입술을 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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