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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침묵 : 불안한 선

bright Andean Alpaca 18

전화벨이 짧게 울렸다.

딱 두 번.

나는 핸드폰을 노려봤다.

누가 이 시간에.

화면엔 번호마저 ‘번호 없음’으로 떠 있었다. 왼손 검지로 떨리는 손목을 감쌌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속에서 메아리처럼 도는 느낌이 들었다.

‘받지 마.’

내 안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그래도 손끝이 먼저 움직여, 디스플레이를 터치한다.

“……여보세요.”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다.

케케묵은 정적만 남고, 그 뒤로 뭔가 지저분한 바람 소리 비슷한 게 깔린다.

셋, 넷, 다섯……

나는 숨을 죽였고, 반대편에서 또렷하진 않지만 분명히—누군가 숨을 쉰다.

의식적이라기보다, 고장 난 라디오를 튼 느낌?

소란한 거리의 혼잡이나, TV의 잡음이 묻어 있다.

나는 핸드폰을 한 번 더 귀에 가까이 붙인다.

“……누구예요?”

고요.

한 번, 길게 숨이 들어쉬어졌다—그건 분명 젊은 남성이다. 조금 애쓰는 소리가 나고,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막은 듯 숨을 삼킨다.

진우 생각이 바로 났다.

아니, 그냥 어떤 남자의 기척이 이렇게 예민하게 전달된다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스스로 아는 거겠지.

나는 무릎에 있던 작은 노트와 연필을 주워 든다.

“진우……?”

툭, 내뱉은 이름.

그 쪽에서 미세하게 잡음이 흔들렸다.

바람인지, 얼굴을 감싸는 손이 잠깐 움직였는지.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

숨이,

계속,

이어지는

조금 높아진 박동.

“누구냐고 물었잖아요. 장난하지 말고—”

내 목소리가 뜻밖에 맑게 울린다.

그때, 전화가 아주 갑자기—‘딸깍’

통신선이 끊어지는 아날로그적 단절,

그 섬뜩한 정적.

나는 귀에서 핸드폰을 내렸다.

액정에 남은 건 ‘통화 종료’. 아무 번호도, 남지 않았다.

오른손 마디가 시린 걸 느끼며 다시 전화를 눌렀다. 번호기록, 부재중, 문자, 메신저—

아무 흔적도 없다.

몸이 불현듯 얼음물에 잠긴 것처럼 굳는다.

그러다가,

잠금화면으로 돌아온 액정 위 작은 얼룩에 시선이 걸린다. 밤마다 물감 묻은 손.

별것 아니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단서고 위협이었다.

진우 실종 이후, 전화 하나 문자 하나에 가슴이 요동치는 걸 수없이 반복했다.

경찰서에서 “금융사기니 번호 차단해 두시라”던 경감의 무심한 목소리도 떠오른다.

진짜, 이게 그저 장난 전화였을까.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녹음…… 역시 안 해놨다.

그저 젊은 남성,

분명 숨소리가 떨리고, 뭔가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것.

진우와 비슷한 또래, 그 음색 어디를 잡아보기 위해 다시 곱씹는다.

스튜디오 창밖으로 불 꺼진 골목이 길게 늘어나 있다.

가장자리, 바람이 잠깐 창문을 두드린다.

내 안의 불신은 다시, 아주 날카롭게 선을 긋는다.

나는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는다.

손가락 끝에 힘을 줬다 뺀다.

화장지 위에, 얇게 떨리는 메모를 남긴다.

- ‘숨소리. 젊은 남자. 망설임.

배경: 바람, 아스팔트,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진우?’

어둠이 가득한 방 안,

나는 문득, 계단 아래 초인종 소리에도 귀를 세운다.

누군가 이 도시 어딘가에서,

단지 용기를 내 한 번쯤, 내게 신호를 보낸 걸까.

아니면 내가 다시, 익숙한 환상에 기대는 걸까.

멀찍이,

스튜디오 바깥에서 혼자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

‘성구 아저씨겠지.’

나는 침묵 속에서 다시, 진우의 마지막 기록을 떠올린다.

내일, ‘망각로’를 찾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내 안의 의심,

불안의 진짜 목소리다.

이번 전화는,

분명 무언가를 남겼으니까.나는 사위어가는 불빛 아래에서, 손끝에 힘을 주지 못한 채 펜을 놓았다. 메모지에 남은 단어들이 일그러져 보였다—‘숨소리’, ‘망설임’, ‘진우’.

조용히 숨을 밀어내려 해도, 가슴 안쪽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옆에 세워둔 오래된 우산 손잡이가 흔들거리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별것 아닌 사소한 흔들림에도 방 전체가 휘어지는 것 같다.

책상 맞은편에 쌓아둔 진우의 작업노트가 살짝 기울어져 있다. 그 위에, 혼란스러운 필기—코드처럼 툭툭 끊어지는 곡선과 숫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좁히고, 한 페이지를 더 펼친다.

마지막으로 적힌 날짜가, 진우가 사라지기 전날이라는 걸 다시 인식한다.

아래쪽 구석엔 흐릿하게 번진 검은색 얼룩, 그리고—‘여길 지나지 말 것’이라는 낙서.

왜 이렇게, 모든 게 경고처럼 내 앞에 드리워져 있을까.

방 한편, 낡은 벽시계가 분침을 씹듯 덜컹인다.

이 시간에 누군가 다시 전화해 올 것 같은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휴대폰을, 손목과 같이 붓자국 묻은 손으로 감싸쥔다.

액정을 들여다보면, 나 자신과 똑 닮은 희미한 얼굴이 겹쳐진다—불안, 피로, 그리고 어쩌면 조금의 희망.

나는 일어선 채, 스튜디오 문에 다가가 조용히 귀를 갖다 댄다.

바깥 복도를 건너는 발소리는 없다.

도시의 숨소리만, 빗물과 함께 바닥을 스치는 소음처럼 이어진다.

“진우야…”

아주 낮은 목소리로, 평소보다 부드럽게, 내 이름 뒤에 동생의 이름을 덧붙인다.

이렇게라도 불러야, 봐야 할 무언가가 다시 내 방끝에 나타나줄까.

메모지를 접어 노트 사이에 끼운 뒤, 나는 한참 만에,

캔버스 앞에 다시 앉았다.

붓끝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다시, 똑같은 문양을 그릴까 말까 망설이면서

오늘밤 그 전화가 남긴, 설명할 수 없는 흔적을

어떻게든 그림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만이 느리게 떠오른다.

나는 손끝에 힘을 줘, 흰 공간 위 한 번 더 검은 굴곡을 그린다—

이번엔 평소보다 조금 더 날카롭고, 조금 더 불안한 선.

어떤 식으로든,

진우와 이 밤의 목소리 사이에,

실패하지 않을 암호를 남겨야 할 것 같다.

밖에서,

갑자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툭 하고 파문을 던진다.

나는 찬물 한 잔을 따르며,

무언가 곧, 다시 울릴지도 모른다는 감각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잠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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